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한영 암살 사건 (문단 편집) ==== 피격 이틀전 ==== * '''피격 이틀전 인터뷰내용 (1997년 2월 13일 목요일)''' 1997년 2월 12일 수요일에 이한영은 임시거처에서 잠시 나와 강남의 압구정동 프린세스 호텔에서 아르바이트생들과 함께 묵고 있었다. 13일에는 서울 G백화점 초콜릿 매장에서 중앙일보 기자와 인터뷰가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돈이 최고니까 초콜릿부터 팔고 인터뷰합시다."''' 며 서울 갤러리아 백화점 지하 1층 초콜릿 매장에서 농담을 하는등 한결 여유가 있어보였다. 백화점 지하 1층에서 1월 10일부터 2월 14일까지 초콜릿매장을 운영한 이씨는 발렌타인데이 특수기대에 어울리게 인파가 모여들자 어린이처럼 즐거운 표정이었다. 그러나 순간순간 어두운 그림자가 얼굴을 스쳐 지나가는 것은 숨길 수 없었다. 이씨는 지인에게 "언론에 너무 얼굴이 알려져있는 처지에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 나서도 되는건지 모르겠으며, 이로 인해 신변에 위협을 느낀다" 고 말했으며, 그는 신분을 조금이라도 감추기 위해 수시로 전화. 무선호출기 번호를 바꾸면서 자신의 흔적을 지우는데 안간힘을 써왔다. [[파일:3333345333.jpg]] 1996년 9월부터 이씨와 친분을 쌓아온 지인 1명은 "이씨가 처음 알려준 집 전화번호가 한달뒤에는 달랐고 다시 한달뒤에는 이마저 통화되지 않았다. 무선호출기도 두번이나 번호가 바뀌었다" 고 말했다. 황장엽 북한 노동당비서의 망명후에는 증세가 악화돼 말수가 눈에 띄게 줄어드는 등 피해의식에 사로잡혔다. 특히 이때부터는 자신이 묵고 있던 집주인 김장현씨에게 수시로 '''"언제 간첩에게 당할지 모르겠다"''' 며 불안해했다. 또한 이한영은 여러개의 안경을 번갈아 사용하는가 하면, 안경테도 자주 바꾸었고, 북한 억양을 없애기 위해 경상도와 전라도 사투리를 배우기까지 했다. 반면 이한영은 관계기관의 보호에도 극도의 불신감을 내보여 마찰을 빚기도 했다. 96년말에는 안기부 간부가 "(신변이 노출됐으니)언제 누구한테 테러당할지 모른다. 안가에 들어와 살아" 고 충고하자 이씨는 "안기부가 나를 감시하려고 한다. 죽어도 안가에서는 살지 않는다" 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